님, 혹시.. 책📚.. 좋아하시나요. 저는 참 좋아하는데요. 소설과 에세이부터 각종 분야의 교양서까지, 그게 책이기만 하다면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읽는 편입니다. 흠흠. 자랑은 아니구요😎

지금은 그렇지만, 제가 막 책에 빠지기 시작했었던 어린 시절에는 소설, 그중에서도 일본 작가의 소설만 읽었어요. 온다 리쿠, 오쿠다 히데오, 요시모토 바나나의 책은 단 한권도 빼먹지 않고 봤구요.

정말이지, 책📖 이라는 것에는 묘한 매력이 있습니다.

손때로 부들부들해진 표지와 종이 냄새 물씬 풍기는 내지, 해진 갈피끈, 그리고 꾸물거리는 활자들이 품고 있을 이야기와 감각, 그것들이 모여 하나의 물성(物性)을 이룰 때, 그 온전한 자기 완결성을 저는 사랑합니다.

한 권의 책이 가진 자기완결성. 그것은 뭐랄까요, 하나의 세상입니다. 영국의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도 그렇게 말했대요.

도대체 어떤 계기로 책의 세계에 빠지게 됐는지는 생각나지 않습니다. 대신 생생하게 기억 나는 건, 책들을 만나던 공간이에요👀

매주 일요일. 촌스러운 백팩을 매고 낡은 시립 도서관에 가서, 다른 데는 눈길도 주지 않고 청구기호 833(일본소설) 서가로 직행하곤 했습니다. 

반들반들했던 오래된 나무 서가, 들숨마다 훅 끼쳐오던 종이 냄새와 항상 신문을 읽고 있던 할아버지, 제 키보다 훨씬 높은 곳까지 꽉꽉 들어차 있던 책들. 무궁무진한 이야기들을 만날 가능성을 품고 있던 도서관은 단언컨대 제 유년기의 보금자리였습니다.

그래서, 갑자기 도서관 이야기를 왜 하냐면요. 오늘 책곳간에서 방출할 책은 도서관이라는 공간과 관련이 깊기 때문입니다.

도서관에 대한 책은 아니지만, 바로 도서관의 NPC(이런 표현이 실례일까요), 사서 선생님이 쓴 책이거든요.

오늘의 책은 사서교사 정원진 님의 「선생님도 선생님이에요?」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도서관을 그렇게 좋아하는 저도 사서 선생님에 대한 생각은 별로 해본 적이 없습니다. 공립 도서관의 사서님들은 공무원이겠거니, 중고등학교 도서관에 있던 사서님들은 선생님.. 인가? 했을 뿐이죠.

제 머릿속에 그분들은 그저 도서관을 지켜주시던 분들일 뿐이었어요.

그래서, 집 근처 작은 북카페에서 「선생님도 선생님이에요?」라는 제목과 함께 한 글자 한 글자 힘주어 적혀있는 '사서교사' 정원진이라는 이름을 봤을 때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저자로 하여금 그 글자들을 꾹꾹 눌러쓰게 한 그 무심한 시선들에 저도 간접적으로나마 일조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대번 골라 들었습니다. 이번 주에는 이 책을 꼭 읽어야겠다. 노트북 앞에서 며칠 밤을 눌러앉았을 저자를 생각하며, 한장 한장 사려 깊고 조심스럽게 읽어보겠다고 마음먹으면서 말이죠.

우선, 저는 책을 고를 때 가장 먼저 책날개를 봅니다. 띠지에 대문짝만하게 인쇄된 어느 유명 인사의 추천사나 출판사(독립서 적의 경우 이마저도 없지만)의 명성보다도 저자 개인의 약력을 중요시 여기는 까닭입니다.

이 책이 무슨 이야기를 할지, 어떤 섬세한 감정을 품고, 얼마나 깊은 사유를 담고 있을지, 저는 저자가 스스로를 소개하는 방식에서 가늠합니다.

그게 언제나 잘 먹힌다는 이야기는 아니에요. 사놓고 후회하는 책도 산더미지만, 하여튼 저는 그렇습니다.

「선생님도 선생님이에요?」의 경우, 책날개에서부터 움찔하는 구석이 있었는데요. 다른 건 아니고, 바로 저자 정원진 님의 나이가 저랑 동갑이라는 사실에서요. 세상에.

말도 안 됩니다. 선생님은 어른들이 하는 거 아니었나요? 동갑이라니요. 무언가 잘못됐다, 싶었습니다. 어느새.. 이건 아니죠🤨..

하여튼, 저자는 선생님입니다. 정식으로 임용고시에 합격해서 담임을 맡는 것도 가능한(관례상 거의 없는 일이라곤 합니다), 명실상부한 중학교 교사.

하지만 자신의 직업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녹록지 않았대요.

「선생님도 선생님이에요?」라는 제목은 사서교사로서 저자가 받아왔던 무심한(?) 시선의 집합과 같습니다.

당장 저부터도 그랬는데, 철없고 살벌한 중딩들은 얼마나 심했게요. 선생님이 하는 일이 무어냐며, 악의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겠는 숱한 질문과 시선을 원진 님은 견뎌왔습니다.

그러해서, 「선생님도 선생님이에요?」는 차가운 무관심을 맞이하여 홀로 선 개인의 기록입니다.

하지만 모든 세상일이 그렇듯 나쁘기만 한 것이 어디 있겠나요. 열 번 울더라도 한 번 웃으면서 또다시 열 번을 울어낼 기력을 얻는 게 우리네 삶 아니던가요.

자주 치사하고 추하더라도, 간간히 반짝이는 순간이 있기에. 이를테면, "선생님을 만나고 나서 선생님 같은 사서 선생님이 되고 싶어졌어요(169p)"라고 말해주는 아이가 있기에.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사람이 사람과 소통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세상이라는 것은 어쩌면, 오직 개인의 인식구조에 한정돼있는 게 아닐까? 그래서, 세상에 70억 명의 사람이 있다면 70억 개의 각자 다른 세상이 있는 게 아닐까? 아니, 혹시 타인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착각이지 않을까? 

흠🤨 모르겠습니다.

이런저런 책을 읽어봐도, 똑똑한 철학자나 과학자들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딱히 뾰족한 수가 없나 봐요. 그래서, 일단은 잠정적으로나마 임시결론을 내렸습니다. 사람은 각자의 세상에서 산다. 모두 서로가 서로에게 미끄러지며, 주어진 자신만의 세상 속에서 산다.

다만, 서로의 세상을 언뜻 엿볼 수 있는 창이 있다면, 그건 바로 책이 아닐까요?

저는 사서교사가 어떤 과정을 거쳐 무슨 일을 하는지, 왜 그 일을 하는지, 그 일이 가지는 가치가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했어요. 그리고 세상에 나와 같은 해에 태어난 정원진이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도 몰랐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좀 달라요. 사서교사는 어쩌면 학생들의 정서를 최후에서 지켜내는 사람(9p)이며, 세상의 어떤 사서교사는 도서관이 소란스러운 공간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고(87p),

피겨선수의 체인지풋 콤비네이션 스핀을 보고 하루를 살아낼 힘을 얻는 사람도 있는 것을(150p) 알게 됐죠.

 

또 다시 그런 생각을 합니다. 어쩌면 책갈피는 눈금인지도 모르겠다고요. 세상은 읽어낸 활자만큼 넓어지고, 넘겨진 책장만큼 깊어진다고요. 진실로 책 한 권은 하나의 세상이라고요.

그러해서 오늘, 제 세상은 조금 더 넓어졌나 봅니다🤸.

하지만 세상일이 어디 마음 같이 흘러가던가요. 푸른 제복을 입고 싶었던 그는 어느새 녹색 앞치마를 매고, 점멸하는 전자시계의 불빛 속에서 커피를 내리게 됐습니다. 2분 30초 안에 내려져야 하는 커피를 만들며, 성혁 님은 썼습니다. 

노량진에 대해, 월급에 대해,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스스로에 대해-

어린 날의 저는, 예술이란 반 고흐나 베토벤 같은(특별한) 사람이 하는 것이라 생각했어요. 진정한 작가는 헤밍웨이 같은 사람들이나 할 수 있는거라고 생각하기도 했구요. 왜 그랬을까요. 아마 흐리멍덩한 동경의 마음으로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살아가다 보니 문득 알게 됐습니다. 쓰는 사람은 모두 작가라는 것을요.

신춘문예에 당선되지 않아도, 굵직한 문학상을 받아내지 못하더라고, 쓰는 사람은 작가입니다.

가만히 눈을 감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라는 이문재 시인의 시처럼, 묵묵히 눌러앉아 활자를 밀어내고, 문장을 직조하고, 턱 눌러앉은 답답함을 견디며, 머릿속에 부유하는 안개를 애써 지워내 또렷한 줄글을 뽑아내려는 모든 이들은 작가입니다.

따라서- 앞치마를 매고, 원두를 갈고, 스팀을 뽑아 2분 30초 안에 온전한 음료를 완성해 내는 어떤 손도 작가의 손입니다.

이 책에는 별다른 스펙타클한 사건도, 손에 땀을 쥐는 기승전결도 없어요. 그러나 그러면 어떤가요? 어제 들어온 월급 이야기, 오늘 있었던 진상 손님이야기, 그냥 쓰면 안 되나요?

자 그래서, 2분 30초 안에 커피를 완성해내지 못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처음에는 초록색으로 점멸하던 불빛은 2분이 넘어가면 노란색으로 바뀌다가, 2분 30초에 다다르면 빨간색으로 변합니다.

피를 연상시키는 그 공격적인 빛깔 속에서, 룰(rule)을 어긴 직원에게 벌어지는 끔찍한 일은 바로..

조금 늦더라도 커피는 만들어지고, 손님은 아무렇지도 않게 음료를 받아 가고, 인생은 계속됩니다. 별다른 일 없이 잘 살 겁니다. 우리 모두요🙂

조용한 주택가의 골목에 위치한 북카페입니다. 위치한 동네만큼이나 조용한 분위기와 아기자기해요. 뭐랄까.. 힙하고 감성적이라기보다는, 사장님의 애정과 손때가 느껴진달까요. 보유 장서가 아주 많지는 않지만, 한쪽 벽면 정도는 알차게 채워져 있습니다. '아무튼, 읽어봅시다'라는 독서 모임도 운영하고, 종종 북토크도 진행하신다고 해요. 제가 책을 구입하러 방문했을 때도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의 저자 황보름 작가님 북토크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자상한 시간」은 동명의 출판사와 같이 운영됩니다. 서점을 방문하시면, 사장님이 직접 출간하신 책들을 만나보실 수 있어요😎

님, 오늘의 레터, 어땠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