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곳간 : 거, 같이 좀 삽시다!

2022. 5. 15.

"책은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한다네"

작가 프란츠 카프카가 한 말이에요. 님, 님은 책장을 넘기는 순간마다 도끼처럼 내려쳐지는 책을 만난 적 있나요? 혹시 일 년에도 수만 권씩 쏟아져 나오는 책의 홍수 속에 내 취향에 맞는 책을 찾기 힘들진 않나요? 괜찮아요. 님의 취향에 맞는 책과 공간, ‘책곳간’ 이 찾아줄게요:)

"아유, 너무 고맙네.. 너무 고맙네.."

1년 정도 전, 그러니까 제가 아직 대학의 끄트머리에 발 한쪽을 얹고있을 시절에, 어떤 아르바이트를 하나 한 적이 있습니다. '장애 성인 유튜버 교육 프로그램'의 보조강사였죠.

교육을 신청하신 분은 10명 남짓, 척수 장애를 가져 휠체어를 타신 분이 넷, 듣지 못해서 말을 못하게 된 분들이 넷이고, 나머지는 옅은 지적장애를 앓고 있지만 혼자 어느 정도 거동이 가능하신 분들이었어요.

프로그램은 순조로웠습니다. 다들 적극적이고 유쾌하셨고요. 특히 교육실의 왕언니 김명순(가명) 씨가 매일 만들어주셨던, 어딘지 모르게 오묘했던 쌍화탕..

그것은 신세계였습니다. 맛도 맛이지만, (명순 님의 주장대로라면) 간 기능, 피로회복, 혈액순환에 탁월하며 심지어는 코로나 예방도 가능한 희대의 명약이었으니까요.

그 엄청난 걸 교육 기간 내내 하루에도 두세 잔씩 복용했습니다. 대구경 포탄만 한 보온병에 한가득 챙겨오신 쌍화탕이 조금이라도 남을 때면, 김명순 씨는 회한과 실의가 담뿍 담긴 표정으로 창밖을 바라보곤 했거든요. 그것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여하튼, 정말이지 잊지 못할 추억이었어요..

따위의 상투적인 말로 뭉뜽그려질뻔 했죠.

점심시간만 없었다면요.

우리는 점심시간마다 본관에 있는 학생 식당으로 갔어야 했습니다. 농아 팀은 그래도 괜찮았습니다. 스마트 폰 지도를 보시고 곧잘 찾아가셨으니까요. 문제는 명순 님을 포함한 휠체어 팀이었어요.

교육 진행되던 정보교육관에서 학생식당까지는 기껏 해봐야 5분 거리였습니다.

그러니까 계단을 자유롭게 다닐 수 있고, 언덕길을 별문제 없이 오르며, 대략 25cm 남짓한 연석 등을 건너가는데 애로사항이 없는 경우, 5분.

교육 프로그램 첫날. 저는 비로소 알게 됐습니다. 세상의 누군가에게는 그 거리가 전혀 다른 셈으로 적용된다는 것을요. 수도 없이 돌아다녔던 그 캠퍼스에, 그토록 많은 숨겨진 암초와 위험과 결여가 도사리고 있었다는 것을요.

누군가에게- 이를테면 명순 님에게- 그 거리는 소요 시간이기에 앞서 가불가(可不可)의 영역으로 셈해져야 했고, 그 셈해짐은 손으로 휠체어 바퀴를 밀고, 땡기고, 손을 뻗어 붙잡고, 이를 악물고, 연속된 임박한 위험에 위태하게 대처하고, 그 과정을 몇 번이고 반복하는 지리멸렬한 싸움으로 행해져야 했습니다.

대학교라는 장소의 특성상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는 경사로나 장애인 화장실 같은 시설들이 비교적 잘 갖춰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더운 여름이었습니다. 경사 위의 휠체어는 제법 무거워 5분 정도만 밀어도 땀이 죽죽 났습니다. 그럴 때면 명순 님은 항상 이야기했어요.

"아유, 너무 고맙네.. 너무 고맙네.."

아니에요. 고마워 할 일이 아니지 않나요. 명순 님이 화를 내셔야죠. 유명무실한 경사로와, 앉은 채로는 조작할 수 없는 키오스크와, 누군가는 사용할 수 없는 화장실이기에.

화를 내야 하지 않나요. 서로 연대하고, 서로를 보호하겠다는 공동체의 기본적인 약속이 지켜지지 않아서요.

삶의 과정 중에 누구나 한 번쯤은, 아니 몇 번쯤은, 상대적 약자가 되어 온갖 형태의 높다란 턱과 싸워야 하지 않나요. 그때가 됐을 때, 서로를 지켜주기로 한 게 공동체가 아니었나요.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은 사람들이 어딘가에는 분명히 있다는 그날의 진실이- 쌍화탕처럼 텁텁하게, 그리고 진득하게 혀끝에 남았습니다.

📚 「우리도 아파트에 삽니다」

✍️ 김도요, 이광식

🏢 사회복지법인 동행

💬 에세이

#장애 #에세이

#사회문제 #복지문제

『우리도 아파트에 삽니다』 는요..👀

오늘의 책곳간에서 방출할 책은, 사회복지사 김도요 님과 이광식 님의「우리도 아파트에 삽니다」 입니다🏬

도시 이름만 말하면 자동적으로 밤~바다~ 가 붙어버리는 버스커버스커의 도시, 전라남도 여수에는 '동백원'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사회복지법인 동행이 설립한, 약 80여명의 장애인들이 거주하는 복지시설이었죠.

그런데 2020년쯤, 정부의 정책이 복지 시설들의 소규모화를 유도함에 따라 동백원에 거주하던 분들의 일부가 이사를 하게 됐다고 해요. 그렇게 해서 생긴 것이, 바로 「우리도 아파트에 삽니다」의 배경인 '동행 빌리지' 입니다.

이 동행 빌리지는 사실 그 기획부터가 쉽지 않은 모험이었습니다. 이곳은 독립적인 '시설'이 아닌, 그냥 아파트였기 때문입니다.

그냥 사람들이 그냥 아파트에 그냥 산다는 것이 뭐가 문제가 될까 싶지만, 현실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습니다. 과연 동행 빌리지 가족들은 무사히 입주를 완료 할 수 있을까요?

① 사람 사는 곳

사회복지법인이 아파트 몇 세대를 사들였다는 소문이 나자, 대번 날카로운 전화가 날라왔습니다.

"저도 그 아파트 사는데요.. 아니 근데.. 여기는 사람 사는 곳이에요(18p)."

아파트가 사람 사는 곳이라는 건 누구나 다 알고 있습니다. 사람도 살고, 고양이도 살고, 모기도 살고 하잖아요. 그래서 이사를 가는 건데요. 사람 사는 곳에 사람 살러 가는 것이 무엇이 문제(22p)가 되나요.

사람 사는 곳이 별거인가요. 네셔널지오그래픽 다큐멘터리를 보니까 사람은 사막에서도 살고요, 밀림에서도 살고요, 산에서도 살던대요.

무슨 말이 하고 싶으셨나요. '내가 사는 곳'이라는 말을 하고 싶던 걸까요. 불편하다는 말을 하고 싶으셨나요. 그것도 아니면, 따듯한 환영의 말을 건내려던 게 말이 헛나왔나요.

사람이 사람일 수 있게 하는 것은 상호 존중에 대한 암묵적 합의라고 믿습니다. 따라서 세상에는 뱉어져서는 안 되는 말도 있습니다.

사람이 사는 곳이라면 들려서는 안 되는, 그런 말이 있습니다.

② 이만하면 잘한 거 아닌가요

진욱 씨는 약간의 지적장애와 언어장애를 앓고 있는 청년입니다. 어렸을 적 아버지에게 가정폭력을 당한 탓에, 처음 동백원에 들어왔을 땐 여러 가족들과 직원들을 힘들게 했대요.

하지만 지금은 누구보다도 속 깊고 잔정이 많은 건장한 청년이 됐어요. 그가 동행 빌리지로 이사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부엌에서 밥을 하고있는 직원들의 모습을 보고 자신만만하게 선언했더랬습니다.

내가 밥을 해 보이겠노라고 말이죠. 안 그래도 평소에도 몇 번 밥을 해봤던 진욱 씨, 직원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그의 표정을 보고 말했대요.

"오~ 좋아요. 부탁드릴게요(131p)"

그러나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는 것이 인류 문명사의 뼈 아픈 진실입니다. 얼마 후 세상 즐거운 얼굴로 밥통을 열어젖힌 진욱 씨.

그 안에는 검정색 죽과 유사한 밥(이라고 불리긴 뭐한 것)이 있었습니다. 잠시간의 침묵이 흐르고, 진욱 씨의 표정은 굳어져만 갔습니다.

그때, 동행 빌리지의 가족인 승재 아저씨가 말했습니다.

"몇 번 안 해봤는데, 이만하면 잘한 것 아닌가요?"

맞습니다. 그만하면 잘한 것 아니겠나요? 물론 그 밥통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요.

있잖아요, 성공이라는 것은 '어떤 일에 목적한 바를 이룸'이라는 뜻입니다. 진욱 씨가 무슨 오노 지로(일본의 초밥 명인)도 아니고 말이에요. 가족들을 위해서 밥을 해주고자 했고, 그래서 밥을 했으니 그만하면 잘한 거예요.

사람은 모두 각자 다른 신발을 신고, 각자 다른 길에 놓여있습니다. 그렇기에 어떤 일을 '잘'했다는건 결코 객관적으로 측량될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닙니다.

엉망진창 좌충우돌 얼레벌레 살더라도, 잘살고자 하는 마음만 있다면요. 우리 모두 잘살고 있는 겁니다.

③ 내 집이니까

동행 빌리지에는 시어머니가 한 명 있습니다. 친족 호칭으로서의 시어머니는 아니구요. 그 행동양식에 있어서의 시어머니가 있대요. 바로 잔소리 전문가 진헌 씨입니다.

매일 아침 직원이 출근하면 밤새 있었던 일을 낱낱이 일러바치는, (동행 빌리지 가족의 입장에서는) 얄미운 진헌 씨.

그는 집안일(?)에 누구보다 열심입니다. 자진해서 바닥을 닦고 매일 그릇과 수저를 챙깁니다. 그런데, 사실 진헌 씨는 동백원에 있을 시절 매우 무기력한 사람이었대요. 무언가를 하고자 하는 의욕이 전혀 없이 하루종일 드라마만 봤었습니다.

그런 그가 어떻게 동행 빌리지의 명실상부한 시어머니가 됐을까요.

한날 여느 때와 같이 집안 관리에 열심인 진헌 씨에게 직원이 물었대요. 왜 그렇게 열심이냐고요. 그러자 그는 대답했습니다

"내 집이니까(232p)"

그래요. 내 집이니까. 내 집인데, 내가 열심히 안 하면 누가 하나요. 내가 사랑해주지 않으면, 누가 사랑해주나요. 미우나 고우나 내 집인데.

이러쿵 저러쿵해도, 내 삶인데.

그래서...📚

그래서 이 책을 어떤 사람에게 추천하냐면..

👉 난 평소 사회문제에 관심이 깊다!

👉 사회복지, 공공복지에 뜻이 있다!

👉 상대적 약자들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

같이 보면 좋을 만한 콘텐츠는요.. 👀

📚 「어른이 되면」

✍️ 장혜영

🏢 시월

💬 에세이 & 다큐

# 에세이 #사회문제 #장애

돌본다는 말은, 돌덩이같이 묵직한 굴레를 가집니다.

발달장애인이라는 이유로 18년간 시설에서 살아왔던 혜정 씨. 유튜버이자 다큐멘터리 감독, 현재는 국회의원이 된 그녀의 언니 장혜영 씨는 그런 그녀를 데리고 사회로 나왔습니다. 때로는 행복하고 때로는 고통스럽게 살았던 어떤 자매의 동거 이야기.

그녀들은 별 탈 없이 안온하게,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요?

이 책을 어디서 샀냐면.. 😎

🏢 책방 연희

👉 서울 마포구 와우산로35길 3 B1F

🌐 책방 인스타그램

책방 연희는 경의선 책거리에 위치했습니다. 도시 인문학 서점이라는 독특한 컨셉을 가지고 있고, 넓이에 비해 보유 장서가 풍부한 편이에요. 사장님의 섬세한 큐레이션으로 책방 연희만의 톤앤 매너를 가진 책들이 모여 있습니다. 참고로, 책방 연희의 사장님은 제가 아주 좋아하는(책곳간에서도 다룬 적이 있었던) 로컬 에세이 프로젝트, 「그래서, 서울」의 저자로 참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