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곳간 : 동네라는 말

2022. 5. 1.

💬 책곳간 : 동네라는 말

"책은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한다네"

작가 프란츠 카프카가 한 말이에요. 님, 님은 책장을 넘기는 순간마다 도끼처럼 내려쳐지는 책을 만난 적 있나요? 혹시 일 년에도 수만 권씩 쏟아져 나오는 책의 홍수 속에 내 취향에 맞는 책을 찾기 힘들진 않나요? 괜찮아요. 님의 취향에 맞는 책과 공간, ‘책곳간’ 이 찾아줄게요:)

님, 저는 동네🏘️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왠지 안온하고 평화로운 느낌이 들어서요. 단어에도 맛이 있다면, '동네'는 김이 폴폴 나는 구수한 된장찌개 같아요. 짭잘하고 고소한 텐동이나 탱탱한 명란 파스타도 좋지만, 결국 돌고 돌아 찾게 되는 것은 된장찌개 입니다. 촌스럽다 해도 어쩔 수 없어요. 전 그런 사람인걸요🤣

동네도 그래요.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든 결국 제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곳은 따로 있습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묵묵하게 열리는 세탁소, 커뮤니티 센터를 겸한 미용실과 결코 사람 손길을 허용치 않는 터줏대감 길냥이, 골목에 깃드는 볕의 질감, 그 모든 요소들이 총체적으로 어우러질 때 비로소 '동네'가 됩니다.

저는 제가 사는 곳- 서울 봉천동🏠에 대한 애정이 대단합니다. 스스로 의지로 정착한 첫 번째 동네거든요. 이 곳에 처음 왔던 날, 죄송하지만 왠지 신뢰가 가지 않던 부동산 아저씨를 따라 언덕(제법 우람한)을 오를 때 대번 느꼈죠. 이 좁은 골목, 단단한 언덕, 낡은 주택, 완벽해. 여기야. 하고 말이죠.

그래서요, 망원동의 작은 책방에서 「그래서, 서울」을 만났을 때 정말이지 기뻤습니다. '로컬' '에세이' '프로젝트'? 사랑해 마지않는 단어들이 3개씩이나 조합돼있으니, 이건 사야 해..💸 흠흠.

📚 「그래서, 서울」

✍️ 콰야 / 김예지 / 여행자메이

김상민 / 안유정 / 구선아

🏢 방 (ㅂang)

💬 에세이

#서울 #동네 #에세이

#로컬 #공간

『그래서, 서울』 은요..👀

이 책은 서울이라는 육중한 전체 속에 각자 다른 부분을 점하여 살아가는 6명의 저자가 같이 썼습니다. 일러스트레이터, 에디터와 기자, 작가, 서점주인 등 먹고 살기 위해 하는 일은 제각각이지만 이들에게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어요. 바로 저마다의 동네를 사랑한다는 것.

이들이 서울에 오게 된 시기와 연유는 모두 달라요. 고향이라서, 일 때문에, 공부 때문에, 아니면,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아서.

하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찌 됐든 이 들은 이곳에 왔고, 터를 잡고, 일을 했고, 먹고 마시고, 점차 각자의 자리에 풍경으로 스몄습니다.

동네의 로컬이 된다는 것은 융해(melting)와 비슷해요. 틀에 맞지 않는 얼음처럼 덜그덕거리며 들어왔다가 생활의 과정으로 연마되어 녹아내리는 거죠.

낡은 세탁소, 촌스러운 미용실, 빛바랜 골목, 00네 분식집 같은 정경들과 온전히 하나로 뭉뚱그려질 때, 비로소 우리는 로컬피풀🚶‍♂️이 됩니다.

「그래서, 서울」은 그런 이야기예요. '나'에서 '우리'로 나아가는 이야기. '내 집'에서 '우리 동네'로 나아가는 이야기.

① 묵묵하게 살아가는 일

저에게는 오랜 숙제가 하나 있습니다. 언젠가 스쳐 가듯 읽었던 시의 제목을 찾는 일입니다. 사실 한 구절도 제대로 기억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시가 가진 어렴풋한 이미지만은 마음속에 깊이 남았어요.

'누구나 그렇게 살아간다. 희망과 절망 사이를, 잔뜩 부풀었다 꺼졌다-' 어쩌고저쩌고.. 단서는 이 정도가 전부입니다. 혹시 비슷한 시를 알고 계신 분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약소하게나마 사례합니다😐

어찌 됐든, 살아가는 일이란 담벼락처럼 묵묵해지는 일이라 믿습니다. 어느 새벽 잔뜩 취한 사람의 사연 있는 구토도, 하릴없이 배회하는 강아지의 오줌도, 방금 이별 당한 남자의 눈물도 모른 척 눈감아주는 성숙으로 나아가는 일이라 믿습니다.

동네의 로컬이 되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원할 것 같던 친구들이 하나 둘 도시를 떠나고, 단골 가게들이 없어지고, 매년 겨울 갈아치워지는 멀쩡한 보도블럭들을 묵묵히 지켜봐야 하는, 녹록지 않은 일입니다.

여행을 하고 그 여행을 소개하는 일을 하는 여행자메이(필명입니다) 님은 가장 불안했던 청춘을 봉천동에서 보냈습니다. 불안한 일을 하고 불안한 연애를 하고, 똑같이 불안한 청춘들과 같이 술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낡은 봉천동은 그런 불안들을 묵묵히 품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며 청춘은 어린 티를 벗어 원숙해지고, 몇몇 친구들은 떠나고, 변하고, 사라졌습니다. 그녀 역시 어느 정도의 성숙과 안정을 가지게 됐죠.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대요.

'어쩌면 그 춥던 겨울이야말로 가장 아름답던 여행의 순간이었는지(68p)'도 모르겠다고요. 묵묵히 불안을 견뎌내던 그때, 그 친구들, 그 봉천동. 그때가 가장 찬란했던 삶의 순간이었는지도 모르겠다고요.

② 우리 모두는 각자의 궤도에

한때는 세상에 착한 것과 나쁜 것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어릴 적 좋아하던 만화영화에 악당과 주인공이 있어서요. 하지만 일년 이년 살아가며 사실 그다지 착하지 않은데 착한 놈이 되고, 그리 나쁘지 않은데도 나쁜 놈이 되는 경험을 몇 차례 하면서 알게 됐어요. 세상은 흰색도 검은색도 없는, 온통 회색이라는 걸요.

「책방연희」를 운영하는 구선아 님에게 청량리는 그랬습니다. '계절이 변해도 언제나 희뿌연 회색 동네(132p)', 낭만은커녕 '청소년 입장 불가 지역이라는 표지판이 있고, 여기저기서 놀다 가요, 하는 목소리가 나지막이 들려(130p)' 왔던 곳. 그녀에게 청량리는 그다지 아름다웠던 곳이 아니었대요.

하지만 말이에요. 도시의 끄트머리에 불과할 것 같은 그곳에도 삶이 있습니다. 미우나 고우나 하루를 살아내는 사람들의 표정이 있고, 각자의 사정과 사연으로 이루어진 일상의 궤도들이 있습니다. 그립든 아름답든 후회되든 간에, 어찌 됐든 그곳엔 분명 내 삶이 오래 있었습니다(138p).

③ 인생의 로컬이 된다는 것

언젠가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어쩌면, 도시라는 건 살아있는 게 아닐까? 만약 UFO를 탄 까까머리 외계인이 지구 옆을 지나다 문득 창(이라는 게 있을까)밖을 바라본다면, 뉴런처럼 번쩍거리는 우리의 도시를 보고 '저거 살아있네'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왜 해?"라고 물어보셔도 소용없습니다. ENTP는 원래 그렇거든요.

하여튼, 그런 생각을 오래 한 끝에 결론을 내렸습니다. 살아있다.

저는 도시의 존재 방식을 그 나름의 생명현상이라고 정의내렸습니다. 웃고 울고, 먹고 마시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표정과 몸짓이 모여 동네가 되고, 424개의 동(洞)네가 모여 서울이라는 도시의 외연을 이루니까요.

생명이 모인 게 생명이지, 뭐가 더 있나요?

그래서, 내 동네의 로컬이 된다는 것은 결국 생명을 이루는 일 입니다. 하루를 묵묵히 살아내는 것, 일상적 공간과 시간을 지켜내는 것, 수많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서 '그래서'로 나아가는 것. 그것은 결국 생명을 이루는 일입니다.

일상적 하루는 선형의 궤도를 만들어내고, 우리 모두의 궤도는 하나의 그림을 만들어냅니다. 동네라는, 도시라는, 생명이라는 그림을요.

따라서 「그래서, 서울」은 살아있음, 그 자체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살아서 꿈틀대는 생명에 대한 이야기, 내 '동네'에 대한 이야기.

그래서...📚

그래서 이 책을 어떤 사람에게 추천하냐면..

👉 나는 어느 동네의 명실상부한 로컬이다!

👉 사람 사는 이야기, 따뜻한 에세이가 좋다!

👉 일상적 시간, 생활적 공간을 새롭게 보는 시각이 재밌다!

같이 보면 좋을 만한 콘텐츠는요.. 👀

📚 「88 SEOUL」

✍️ 최지웅

🏢 프로파간다

💬 사진집

# 서울올림픽 #80년대 #아카이브

# 다큐멘터리 사진

언젠가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 어느 책(잡지였나?)에서 이런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어요. 술에 취해 고향에 가고 싶다고 투정 부리던 작가에게 어느 늙은 시인이 대뜸 얘기했대요.

"00아, 고향은 공간이 아니라 시간이다"

늙은 시인은 알아차렸던 거죠. 작가가 돌아가고 싶었던 곳은 장소가 아니라 시절이라는 걸요. 공간에는 시간도 스미는 법입니다. 동네도 마찬가지예요. '내 동네 00동'은 단지 지리적인 의미만을 가지진 않습니다. 어느 순간, 어느 시절이라는 시간상의 위치도 같이 점하기 마련이에요.

때문에 세상에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동네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88년도의 서울 같은.

「88SEOUL」의 저자 최지웅 님은 그때 초등학교 6학년이었습니다. 온통 올림픽으로 들끓던 도시 속에서 소년은 마스코트 호돌이와 올림픽 포스터에 마음을 홀라당 뺏겼대요.

그렇게 열병 같은 시절이 지나고 이리저리 치이다 보니 지난 시간이 30년, 어른이 된 그는 생각했죠. 1988년, 아득했던 그 시절의 기록을 모아 보고 싶다고.

이 책을 어디서 샀냐면.. 😎

🏢 여행마을

👉 서울시 마포구 월드컵로17길 57

🌐 책방 여행마을 블로그

캠핑용품 큐레이팅 매장과 샵인샵(shop in shop) 형태로 공간을 공유하고 있는 독립 서점 입니다. 책곳간에서 한번 소개시켜드린 적이 있는대요. 책곳간 에디터💬가 일하는 사무실과 가까운 관계로 퇴근길에 종종 들린답니다. 보유하고 있는 장서 수가 많지는 않지만, 책방 이름과 걸맞게 여행에 관련된 독립 서적을 알차게 보유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