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곳간 : 님, 거리두기가 끝난대요

2022. 4. 24.

"책은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한다네"

작가 프란츠 카프카가 한 말이에요. 님, 님은 책장을 넘기는 순간마다 도끼처럼 내려쳐지는 책을 만난 적 있나요? 혹시 일 년에도 수만 권씩 쏟아져 나오는 책의 홍수 속에 내 취향에 맞는 책을 찾기 힘들진 않나요? 괜찮아요. 님의 취향에 맞는 책과 공간, ‘책곳간’ 이 찾아줄게요:)

님, 지난 2년간 우리 모두를 괴롭혔던 사회적 거리 두기가 사실상 끝났습니다. 번화가에 사람들이 북적이는 모습이 이렇게 낯설게 느껴지다니요😅

아직 코로나☠️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조금씩 일상을 찾아가는 모습이 반가운 건 사실입니다. 아마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나면 답답한 이 마스크도 벗게 되겠죠.

그래서 말인데, 님! 봉쇄 조치도 해제됐는데, 이제 뭐부터 하고 싶어요?

저는 뭐니뭐니 해도 여행✈️부터 생각나요. 딱히 구체적인 계획이 있는건 아니지만, 이미 마음은 캐리어 싸고 비행기 찾아보고 숙소예약하고 택시 잡아탔습니다.

역시 출발은 밤 비행기가 좋겠고요, 뉴런처럼 반짝이는 김포가 참 예쁘거든요. 이륙 후에는 굳이 챙겨간 책을 좀 읽어야 합니다. 그게 또 낭만이라서. 근데 읽다 보면 잠이 솔솔 와요. 그래서 꾸벅꾸벅 졸다 보면 기내식 냄새가 나요. 그럼 또 벌떡 일어나야.. 흠흠.

하여튼 오늘 책곳간에서 방출할 책은, 아기자기한 매력이 있는 여행 에세이 입니다. 아니, 그럴 예정이었습니다. 아니, 일단은 그렇다고 해야하나?

📚 「너를 따라가다, 나를 만나다」

✍️ 박혜영 / 🎨 Sunny

🏢 드로잉 모먼

💬 에세이

#여행 #유럽 #예술

#모녀지간 #은퇴

『너를 따라가다 나를 만나다』 는요..👀

사실 이번 뉴스레터 주제를 여행으로 하자고 결정하고 나서, 앉아서 생각을 좀 해봤습니다. 내가 정말 재밌게 읽었던 기행 에세이가 있었나? 흠. 우선 중학생 때쯤, 작은 시립도서관에서 읽었던 배낭여행 에세이가 생각났습니다.

한 젊은 남자가 무일푼으로 떠난 동남아 여행기였던 것 같습니다. 아마 라오스였나? 그때까지만 해도 그런 배낭여행기가 신선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리고 라오스가 지금처럼 관광지로 개발되기도 전이었고요.

표지에 어린 현지 소녀의 사진이 대문짝만 하게 박혀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과연 그 소녀에게 허락을 받았을까?).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제목이 기억나지 않아요. 패쓰.

다음으로 떠오른 건 류시화 시인의 「지구별 여행자」입니다. 너무(x100) 좋아하는 책이긴 한데, 독립 출판물은 아니기 때문에 뉴스레터에서 다루기는 곤란했고요.

그래서.. 무작정 독립 서점📚으로 갔습니다. 가면 뭐라도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다행히 회사 근처에 여행 서적만 전문적으로 큐레이팅 해둔 곳이 있더라구요.

거기서 만났죠. 여행은 여행인데, '울며 겨자먹기로 떠난 여행이야기'를.

① 세상에는 가기 싫은 여행도 있다

저자 박혜영 님, 씨? 아니.. 선생님(실제로 은퇴한 중등교사 십니다)은 여행을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부쩍 사이가 요원해지는 딸의 지속적인 요청에 반강제로 유럽행 비행기✈️에 오르고 말죠.

그런데 이게 웬열? 모녀간의 이심전심 마음 맞추기 여정을 해보자던 따님의 청사진은 낯선 나라에서 살아남기라는 고된 노동의 연속 앞에 산산이 조각나고 맙니다.

딸은 깔끔한 신식 숙소보단 세월이 느껴지는 낭만적인 민박집이 좋았지만, 엄마는 안전하고 쾌적한 호텔이 좋았고요. 딸은 이리저리 참견(?)이 많은 엄마에게 불만이었지만, 엄마는 혼자서 모든 일을 처리하려는 딸이 불안했습니다.

결국 박혜영 씨는 타국만리에서 눈물을 터뜨리고 마는대요. 딸은 덜컥 몸살에 걸려 앓아누워버리고요..

어우, 텍스트로만 봐도 정신없습니다. 과연 이 위태위태한 모녀의 외줄 타기 여정, 무사히 끝날 수 있을까요?

② 그들의 사정

사실 이 모녀가 마음 맞추기 여행을 떠나게 된 데는 깊은 사연이 있었습니다. 바로 딸 Sunny 님의 '밀알' 선언이었죠.

Sunny 님은 현재 일러스트레이터🎨 입니다. 그녀는 그림이 좋아서 그림을 그리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엄마 혜영 님의 마음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그림은 취미로 그려도 좋고, 미술을 직업으로 삼아도 좋으니(선생님이라든지) 안정적인 직업을 갖기를 바랐습니다.

그랬더니 딸은 폭탄 같은 선언을 뿜어냅니다. "난, 예술을 위한 한 알의 밀알이 돼도 좋아!" 라구요. 혜영 님은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모진 삶의 풍파 속에서 딸만은 평화롭길 바라며 온 힘을 다해왔는데, 밀알이라니요.

혜영 님은 한때 연극배우를 꿈꿨던 자신과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했던 녹록지 않았던 세상, 그리고 딸의 폭탄선언이 불러올 미래가 머리 위로 스쳐 아찔해집니다. 그렇게 '마음 같지 않게' 어긋난 마음은 서로를 밀어내게 됐고, 궁여지책인지 묘수인지 모를 여행길에 오르게 된 거죠.

이 모녀에게 있어 이번 여행은 기로입니다. 결별이냐, 결합이냐!

에펠탑, 퐁듀, 쎈느강, 너네가 그렇게 낭만적이라던데, 이 모녀의 화해를 위해 힘 좀 써보면 안되겠니?

③ 그래도 유럽은 유럽이고, 가족은 가족이고, 여행은 여행이고

그래서, 이 둘의 여행은 어떤 결말을 맞았을까요? 두둥..

결국..혜영 님은 Sunny 님을 유럽에 남겨두고 혼자 한국으로 돌아오고 맙니다..🙁

아, 둘이 싸워서가 아니라요! 원래 여행 계획이 그렇게 돼 있어서요. 하하. 둘이 마음을 맞추지 못했다면, 아마 이 책이 출간되지도 못했겠죠?

모녀는 여행동안 서로에게 반목하고 의지하며 모종의 공감을 형성해나갑니다.

아, 정정할게요. 적어도 엄마는 딸의 속내를 이해하게 됩니다. 이 책은 엄마의 관점에 쓰인 책이기 때문에, 딸의 마음이 어땠는지는 아무도 모르니까요😀! 흠. 농담입니다.

혜영 님은 딸의 행동 속에서, 말속에서, 눈빛 속에서 자신의 젊은 날을 포착합니다. 한때 예술을 꿈꿨던 자신과, 시대적 분위기와 현실적인 조건 속에서 스스로를 억압했던 나날들을요.

그리고 텍스트를 통해 딸에게 이야기합니다.

"인제 와서 돌아보니 마음 가는 대로 발길 닿는 대로, 네 발길 닿는 그곳도 길이더라. 그리고 세상의 길은 걷는 자의 것이더라(298p)"

그래서...📚

그래서.. 『너를 따라가다 나를 만나다』 는요, 사실 제가 이번 레터 주제를 정하고 책을 선정할 때 생각한 책과는 조금 달라요. 저는 탈(脫)코시국을 맞이해 여행 욕구를 뿜뿜💨할 수 있는, 그러니까 서정적인 감성이 살아있는.. 뭐랄까요. 예쁜 사진도 많이 있는. 그런 뉘앙스를 생각했단 말이죠.

그러나 이 책은 여행지를 소개하는 듯하면서도, 이런저런 에피소드를 얘기해주기 위해 말 문을 여는 듯하면서도 결국은 내면적 고백(?)으로 귀결되는, 작가의 표현에 따르면 참회록인지 기행문인지 모를(296p) 텍스트랄까요?

참고로 사진은 한 장도 없고요, 그 자리는 Sunny 님의 일러스트로 갈음합니다. 그것도 1도 인쇄(흑백)로.

대신 그만큼 솔직합니다. 저는 이 책을 읽는 내내 어머니 생각을 참 많이 했던 것 같아요. 문득문득 떠오르는 어느 순간, 엄마도 저런 생각을 했겠구나. 하면서 말이죠.

혜영 님은 '너를 따라가다 나를' 만났지만, 저는 여행문을 읽으려다 엄마를 만났습니다😅

어쩌면 그런 게 진짜 여행의 맛인지도 모르겠어요.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낯선 공간에서 생각지도 못한 것과 대면하고, 경험하고, 체화하는 것.

그런 의미에서는 독서도 하나의 여행일까요. 낯선 사람의 낯선 생각을 낯선 텍스트로 대면하고, 그것을 체화해가는 작업이니까요.

만약 그렇다면 대형 출판사의 기획출판물들은 유명 여행지로 떠나는 패키지여행이겠고, 독립 서점에서 만나는 독립 출판물들은 어느 작은 나라의 소도시로 떠나는 배낭여행과 같을까요?

하여튼, 그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래서 이 책을 어떤 사람에게 추천하냐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