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은 그냥 순전히 재미로 읽는 거잖아"
친구 한 명이 제게 말했습니다. 그에게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을 막 추천했던 참이었습니다. 친구는 소설을 전혀 읽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비생산' 적이기 때문에요.
친구는 별 생각 없이 한 말이었겠지만, 그 말은 저에게 꽤 오래 남았습니다.
곰곰히 생각해봤어요. 소설, 나아가 문학의 존재 이유는 '순전한 재미' 일까요? 만약 그렇다면 재미없는 문학은 존재 이유를 잃은 걸까요.
님, 소설이 아닌 시는 어떤가요. 시를 읽는 게 오락적인 '재미'가 있나요?
솔직히 그렇다고 말할 순 없잖아요. 그래서 시는 사라지는 중이고, 마땅히 그래야 하는 걸까요.
곳간지기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에게 있어, 예술과 엔터테인먼트는 전혀 다른 기능을 수행합니다 . 무엇이 더 우위에 있다는 말이 아니라, 다른 쓸모를 가진 행위라는 뜻이에요.
엔터테인먼트는 휴식과 여흥을 위해 존재합니다. 심신이 지쳤을 때 일상을 벗어나기 위한 통로입니다. 그러자면 '재미'가 중요합니다.
왜냐면 무언가를 잊기 위해서는 일종의 마비가 필요하고, 엔터테인먼트 콘텐츠가 가진 고도로 자극적인 설계가 그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님, 생각해보세요. 시도 때도 없이 옷을 벗어재끼는 근육질의 스타가 나와서 밑도 끝도 없이 헬기와 빌딩을 부셔대는 헐리우드 영화를 보고 있자면, 그렇잖아요. 아무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또 그러기 위해서 영화관에 가기도 하고요.
따라서 엔터테인먼트는 일종의 대증(對症)치료의 영역에 속합니다.
반면 예술은(문학은) 조금 더 본질적입니다. 사람의 인식구조는 언어와 서사로 구성된다는 측면에서, 문학은 한 사람이 가진 인식의 확장에 기여합니다.
나를 둘러싼 세계를 위와 아래와 정면과 후면을 두루두루 살펴보고 그 냄새를 맡아보고 한입 베어물어도보게 해주는거죠.
이를테면, 저는 "꽃잎 쏟아지는 벚나무 아래서 문명사는 엄숙할 리 없었다"(김훈)라는 문장을 읽었던 때를 잊지 못합니다.
대학생 시절이었는데, 이 문장을 읽은 이후로는 흐드러지게 핀 벚꽃을 볼 때마다 사람에 대해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만치 거창하고 진중한 것처럼 굴었던 그 모든 인류 문명사가, 한낱의 꽃잎에 비하자면 그저 우스꽝스럽게 느껴졌거든요.
이 문장을 읽는 순간 저의 인식은, 저의 세상은 어느정도 재구성 된 셈입니다.
하여튼, 제게 있어서 문학은 그래요.
해서 오늘은 곳간지기의 세계를 혁신적(?)으로 확장시켜줬던 소설을 간단하게 소개하려고 합니다. 줄거리는 적지 않은 대신, 책을 읽고 같이 생각해볼만한 포인트를 얘기하려고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