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화가, 빈센트 반 고흐는 이제 막 '카메라'라는 개념이 생기기 시작할 때쯤 태어났습니다.
고흐가 1853년생이고, 흔히 최초의 카메라로 인정받는 루이 다게르의 《다게레오타입》이 세상에 나온 게 1837년이거든요.
'장면'을 고스란히 포착하는 기계가 발명됐다고 소문이 퍼지자, 어느 화가가 고흐에게 그랬대요. 우린 다 망했어. 그러자 고흐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사진보다 더 심오한 유사성에 집중해야 해. 그게 화가가 할 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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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그때쯤 부터, 회화의 기능에서 '기록'은 분리되기 시작했습니다.
미술은 계속해서 심오한 유사성(예술성)으로 천착해 들어갔고, 종국에는 상어🦈를 포름알데이드에 가득 채운 유리관에 넣는 행위(데미안 허스트)까지 나아갔습니다.
카메라 역시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 최근에 나오는 고급 카메라는 8,500만 화소에 달합니다. 이제 기록의 수단으로서의 미술은 사진에 밀려 완전히 퇴출된거죠.
그런데, 디지털카메라가 발명되고 모든 면에서 필름 카메라를 압도하기 시작하면서 사진의 기능은 조금 묘해지기 시작합니다.
남는 건 사진밖에 없다지만, 인화로서 물화 되지 못한 디지털 정보는 '남았다'라고 지칭하기엔 뭔가 애매모호해진 거죠.
최소한 저에게는 아직, '기록한다'는 감각은 아날로그의 영역인 것 같습니다👀
하여튼 오늘 책곳간에서는, '기억으로서의 사진'에 대해 소개하려고 해요. |
📚 함께한 계절
✍️ 신정식
🏢 보스토크 프레스
💬 사진집
# 알츠하이머 # 가족
# 출판 공모전 수상작 |
시작은, 가족을 문밖으로 이끌기 위한 잔꾀였습니다.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은 아버지는 무슨 말에도 꿈쩍하지 않으셨대요. 하지만 '사진 찍으러 가자'는 아들의 말 만큼에는 무거운 몸을 움직이셨습니다. 그래서, 잔꾀는 습관이 되고, 습관에 습관이 겹쳐져 기록이 됐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기억을 잃어가는 아버지를 붙잡고 싶은 정식 님의 마음은 사진으로 물화했습니다. 시간은 덧없이 흘러갔지만, 종이 위해 인화된 아버지의 표정은 아날로그의 물성만큼 담담합니다.
정식 님 역시도 담담하게 셔터를 눌렀을 따름입니다.
“헷갈려서... 공 공... 공 2개... 이게... 뭐지?” 휴대폰 시계(8시 41분)를 보며 당황하셨다. 숫자 8을 혼동하기 시작했다. 2019년 12월 16일. p.38 |
📚 「서울의 목욕탕」
✍️ 박현성
🏢 6699프레스
💬 사진집
# 도시 #서울
# 다큐멘터리 아카이빙 |
1997년 2,202곳이었던 서울의 목욕탕은 2018년 현재 967곳으로 줄었고, 그중 30년 이상 된 목욕탕은 132곳뿐입니다.
목욕탕은 말하자면 문명의 첨단을 달리는 공동체 유지 장치입니다. 목욕은 고대 로마의 정체성으로 출발해, 이후 도시라는 거주 형태에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치명적 단점(질병)을 억제하는 수단이었습니다.
21세기 문명을 역습한 코로나19에 대응 수단이 '위생'이었던 점을 생각하면, 목욕의 기능은 아직까지도 건재합니다.
하지만, '목욕탕'은 그렇지 않아요. 목욕탕은 개인화되어 각자의 집 속으로 숨었습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못한 속살을 서로 내보이던 공동체의 상호 신뢰는 목욕탕과 같이 해체됐습니다.
해서, 언젠가는 '당대의 장소'로 남을 목욕탕을 위해 현성님은 책을 만들었습니다. 온기와 습기 속에 남은 삶의 체취는 사라졌지만, 사진은 남으니까요. |
빛이 아름다운 목욕탕[ 사진 : 6699press ] |
📚 「북한산」
✍️ 권도연
🏢 사월의 눈
💬 사진집
# 친구 #산 # 동물
# 가장 내밀한 기록 |
장마가 시작되기 얼마 전, 저는 서울의 관악산에 올랐습니다. 집이 가까운 덕에 운동 삼아 취미 삼아 자주 오르던 산이었습니다. 관악산에는 정상에 이르기 전 꽤나 가파른 계단이 길게 이어진 고개가 있습니다. 항상 그쯤이 고비입니다.
계단을 다 오르고 나면 잠시 쉴만한 중턱이 나오는데, 항상 아이스크림과 음료수 등을 파는 아저씨가 계십니다. 사람 키보다 훨씬 높은 아이스박스 탑을 지게로 이고 산을 오르는 분들입니다. 그곳에서 아이스크림은 2,500원입니다.
하여튼, 그날 저는 그 중턱에서 들개를 만났습니다. 바위 위에 반쯤은 늠름하고 반쯤은 초췌한 몰골로 우뚝했던 믹스 진돗개는 저를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사람을 경계하지도, 친근해 하지도 않았습니다.
왜인지 그 순간이 잊히지 않습니다. 개는 늑대의 친척이라는 측면에서 원래 있을 법한 곳에 있었을 뿐이지만, 도시 한복판에 솟은 문명화 된 산(관악산 꼭대기에 축구공 같은 기상레이더가 있습니다)에서 들개는 왜인지 이질적이었던 탓입니다.
북한산에도 들개무리가 살았습니다. 이는 관악산 들개와는 달리 제 눈으로 본 사실이 아니고, 사진작가 권도연 님의 《북한산》을 보고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꿈틀거리는 몸과 눈까지도, 책을 보고 알았습니다.
"북한산에 개가 산다는 단순한 사실은 그들의 존재를 가능하게 해주는 광범위한 조건들이 구비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들의 영역 행동을 발휘할 수 있을 만한 면적, 먹고 살 만큼의 생태계, 번식으로 존재가 지속할 수 있을 만한 개체군 등 개 한 마리는 이 모든 생태적 요소들을 함축하고 있는 하나의 시적 존재이다. 북한산은 찡찡이와 단비라는 작품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다" _권도연 |
🏢 사진책방 이라선
👉서울특별시 종로구 효자로7길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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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 통의동에 위치한 (꽤)아담한 사진 책방입니다. 작고 아늑한 공간에 사진집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어요. 사실 책방이라기보다는, 사진집만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공간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그만큼 주제에 충실하다는 말씀이신 거지🕺
이라선에는 낯선 해외 사진작가의 작품집이 많았는데, 시각적으로 강렬한 인상이 남아 자세히 살펴보고 싶은 책이 많았어요. 하지만 좁은 공간에 손님이 너무 붐벼서(주말이었습니다) 아쉽게도 그러지 못했습니다👀. 흠흠.
곳간지기가 이라선을 방문했던 그날, 날씨는 쾌청했고 저는 상당히 한가로웠습니다. 해서 통의동 일대를 두 발로 꾹꾹 밟으며 속속들이 산책해버렸답니다.
길을 걷고 있는데 어느 건물 2층 창문에 코를 박고 자고 있는 보더콜리🐶를 발견했는데, 알고 보니 거기가 또 책방이더라고요. 통의동 보안여관이라는 곳인데, 1층에서는 무료 전시가 진행되고, 2층에는 책방 공간이었습니다.. 댕댕이 살앙해..
라 카페 갤러리는 깔끔하고 조용한 까페인데, 2층에 갤러리 공간이 마련돼있고요, 시인이자 사진작가인 박노해 님의 작품을 무료 전시하고 있었어요. 또, 이라선 바로 옆에는 역사책방이라는 서점이 있었는데, 역사와 관련된 서적만 전문적으로 다루는 공간이었습니다. |
사진 얘기가 나왔으니 끼워 넣는,
곳간지기가 사랑하는 사진전 PICK. (feat.내돈내산) |
- 《포토아크, 너의 이름은》
- 2022.04.12. ~ 2022.09.12
- 북서울 꿈의 숲 상상톡 미술관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들의 '증명사진' 을 기록하고, 수집한 이미지의 방주입니다. 동물을 좋아하는 저는 매우 가슴이 설레면서도 암담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전시를 진행하고 있는 네셔널지오그래픽 시리즈(?)중 가장 많이, 가장 오랜 사랑을 받고 있는 전시라고 알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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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정적 순간》
- 2022.06.10. ~ 2022.10.02
-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
20세기를 대표하는 사진작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정수가 담긴 사진집 <결정적 순간>의 발행 70주년 기념전시. '사진보다 삶에 더 관심이 많다'고 말했던 그의 작품 세계는 미학적 완전성과 일상적 휴머니즘을 동시에 담아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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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비안 마이어 사진전》
- 2022.08.04 ~ 2022.11.13
- 그라운드 시소 성수
베일과 비밀의 사진작가 비비안 마이어 사진전입니다. 아직 오픈을 하지 않았기에 엄밀히 말하면 '내돈내산'은 아직 아니지만, 오픈하자마자 바로 달려갈 생각이에요.
참고로, 비비안 마이어가 왜 베일과 비밀의 사진작가인지는,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라는 다큐멘터리에서 확인해보세요. 정말이지 신비한(?) 스토리가 있는 사진작가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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