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신경숙 님은 본래 작가가 될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저 책을 좋아하고, 많이 읽었을 뿐, 스스로 글을 쓰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생각 자체를 못했었대요. 그러던 중에 우연히(?) 반성문을 써서 담임 선생님께 드렸는데, 그분이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너는 소설을 써보는 게 어떻겠니?"
그 순간, 신경숙 님의 머릿속에는 '밤하늘의 별들이 모두 쏟아져 내려오는 것' 같았습니다. 일본의 베스트셀러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도 그랬어요. 어느 화창한 날 야구장에서 경기를 보다가 문득, '나는 소설을 써야겠다' 하고 생각했다고 하죠. 그리곤 진짜 소설가가 됐고요.
예술가들은 대개, 어떤 형식으로든 배출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야생의 욕구를 가졌습니다(적어도 그렇게 보입니다). 그들에게 창작욕이란 불수의(不隨意)에 가깝습니다. 달궈진 철통 속에 터져 나오는 옥수수 속살같이, 참아질 수 없는 종류의 충동인 거죠.
반면에 투자 IR 자료를 작성하는 스타트업 대표의 글은 좀 다릅니다. 그것은 생리적이고 육체적인 본능과는 무관한, 사회적 필요와 문명의 문법으로 벼려진 명료함입니다. 그것은 글이라기보단 그래프나 숫자의 택스트화에 가깝습니다.
이처럼 유사한 윤곽을 공유한다 하더라도, 각자의 글은 목적과 연유에 따라 전혀 다른 존재 방식을 가집니다.
따라서, 어떤 책은 그저 쓰이는 것으로 제 역할을 다하기도 하지만, 어떤 책은 서점의 베스트셀러 매대에 오르고서도 더 읽히지 못해 사그라들곤 해요. 흔히 사회문제를 고발하는 책들이 그렇겠지요.
오늘 책곳간에서 방출할 책은 두 권입니다. 서로 전혀 다른 방향성을 가지고 나아가 정반대의 종착지에 착탄 하지만, 종국에는 독자라는 하나의 존재 속에 수용되는 두 편의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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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른의 공백기」
✍️ 김롲벋
🏢 무채색
💬 에세이
# 에세이 # 일상의 단면
# 개인의 기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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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서른의 공백기》의 저자이자 글쓰기 모임 '글감옥'을 운영하는 김롲벋 님입니다.
"소속 없이 서른을 맞이했습니다.
낯선 나이의 앞자리와 함께 무력감에 억눌려 공백기를 보냈습니다."
문명화된 인간에게 적(籍)이 없음은 일면 존재 감각의 상실로 다가오곤 합니다. 가족과 학교, 회사, 아니면 특정 업종 종사자- 우리는 그런 식의 구분 짓기를 통해 참을 수 없는 실존의 가벼움을 애써 붙잡곤 해요.
물론 비교적 미숙한 시절- 그러니까 10대와 20대- 에는 청춘 그 자체가 적(籍)이 되기도 합니다. 젊고 싱그러운 생명은 어떤 인위적인 호명이 없이도 존재감을 내뿜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저자 롲벋님은 어떠한 소속 없이 서른을 맞이한 감각을 '공백'이라고 썼어요.
'서른까지의 기억을 돌아보며 시간을 조금씩 덧칠'하며, '괜스레 지쳐갈 때면 틈틈이 노트를 폈' 습니다. 그렇게 모인 글들을 한 권의 책으로 엮었대요.
따라서 《서른의 공백기》는 그 탄생의 산도(産道)상 안으로 향하는 글이라고 하겠습니다. 쓰여진 목적이 스스로에게 겨눠져 있다는 뜻입니다.
생각과 감각을 활자화하는 과정에서 공백은 호명되고, 마침내 지워집니다. 즉, 《서른의 공백기》는 일종의 자가 치유의 한 형식으로써 존재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이 책이 남들에게 읽힐 이유가 없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다만, 글쓰기에는 그런 힘이 있다는 말이예요. 쓰였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존재의 공백은 메우는 힘이- 글쓰기에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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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 김정선
🏢 유유
💬 인문 / 일반
# 교정교열 # 글쓰기
# 내 문장이 이랬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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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밖으로 향하는 글도 있습니다.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원고 교정교열 작업자로 일해온 김정선 님은 타인의 관점에서 글을 보는 사람이에요.
그것이 비밀 일기가 아닌 이상, 세상에 나와버린 모든 글에는 어느 정도의 책임이 있습니다. 읽는 사람의 입장을 고려해야 할 책임 말이죠.
저자 김정선 님은 글 쓰는 이의 무거운 부담을 덜어주는 사람입니다. 비문을 검토하고, 가독성을 고려하고, 문장의 호흡을 위해 어휘를 다듬습니다.
좋은 출판사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저자는 운이 좋습니다. 정선 님과 같은 교열자를 만날 수 있기 때문에요. 하지만, 모든 원고가 편집자의 책상에 올라가는 건 아니잖아요.
해서 정선 님은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를 썼습니다. 글쓴이로서의 자존심과 아집을 흔들어 깨울 수 있는, 문장의 원칙을 제시하기 위해서 말이죠.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는 일종의 개론이자 실용서입니다. 저자는 수천 개의 문장을 해체하고 재조립한 경험을 응축해 몇 개의 지침성의 줄글로 증류해냈습니다.
말하자면 맷돌로 통밀을 갈아 만든 전통 안동소주 같은 책이랄까요. 그 만큼 가치밀도가 농밀하다는 뜻입니다(참고로 안동소주는 40도).
곳간지기만 해도 개인적으로나 공적으로나 글을 쓸 때 '것(의존명사)'이라는 말을 중독적으로 사용해왔는데, 책을 읽고 조금 더 조심스럽게 생각하게 됐답니다.
물론 정선 님의 지침이 무조건 적인 정답이라고 할 순 없지만, 글을 쓰는, 그중에서도 타인에게 비쳐야 하는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는 꼭 구입해보길 추천합니다.
어쩌면, 님의 문장이 개벽할지도 모르잖아요. 책 하나 사 놓는 것 만으로 24시간 맨투맨으로 교정교열 전문가를 만날 수 있는 셈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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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주 지혜의 숲
👉 경기 파주시 회동길 145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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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이데일리, 톱클래스, '지혜의 숲' 홈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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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책공간은 서점이 아닌, 공공 도서관입니다. 파주 출판단지 속에 조성된 『지혜의 숲』 은 학자나 지식인, 연구소와 출판사들이 무상으로 기증한 약 18만 권의 도서가 비치돼 있는 공공 서재 공간입니다.
일단 엄청 넓고요. 책이 굉장히 많고, 무엇보다 사람 키의 두 배가 넘는 책장의 위압적인 멋이 상당합니다. '공공 도서관'이라고 말은 하지만, 책을 대출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다만 비치된 책을 현장에서 읽는 것은 가능하고요. 따라서 도서관이라기보다는 '책이 있는 독서 공간'에 가깝습니다.
곳간지기는 지혜의 숲을 2번 방문해봤는데요. 아무래도 공공장소이다 보니 진짜 독서를 하기에는 번잡하고 분주한 분위기가 신경 쓰이긴 합니다. 하지만 저는 책이 있는 공간 그 자체만으로 충분히 즐거웠습니다.
파주 출판 도시 한가운데 있어서 주변 환경이 매우 깔끔하고, 지적이고, 예쁘며, 평화롭기 때문에, 여유로운 한때 시간을 내서 돌아보기 좋아요.
지혜의 숲은 < 라이브스테이 지지향>이라는 북스테이 공간, 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북소리 책방>, 또 헌책방<보물섬>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또, 출판도시 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강연(주로 인문계열)도 간간히 열리고 있고요, < 출판도시 인문학당> 웹 사이트에 가시면 자세한 정보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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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숲 안에는 까페 파스쿠치가 입점해있고, 근처 출판단지 안 곳곳에도 예쁘고 맛있는 까페들이 많이 있답니다! 그중에서 곳간지기가 픽 한 까페에는 댕댕이가 있었는데요. 진짜 착했습니다.. 귀여웠고요.. 댕댕..
하여튼, 독서도 좋고 일도 좋지만, 가끔 책이 있는 공간 그 자체가 필요할 땐 파주 출판도시를 찾아보는 것도 추천을 드리겠어요. 이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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